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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2. 22世 〉49. <부정공>매헌거사휘연강묘갈명(梅軒居士諱淵壃墓碣銘)
1. 문헌 목록 〉22. 22世 〉51. <부정공>효자휘준섭행장(孝子諱俊燮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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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부정공>묵헌거사휘연성행장(黙軒居士諱淵醒行狀)
黙軒居士諱淵醒行狀 公諱淵醒字順明黙軒其號也高麗光祿大夫檢校大將軍諱璋爲肇祖簪組之赫繼承不絶至諱元吉大匡報國夬祿大夫門下侍中玉川府院君謚忠獻是生諱瑜號虔谷文科中顯大夫判典農寺副正麗亡入杜門自靖守義我朝屢徵至資憲大夫漢城判尹終不就是生諱崇文號竹村武科兵馬節度使 世祖丙子與六臣共被慘禍贈資憲大夫兵曹判書謚節愍寔公之十六代祖也考諱春鉉隱德不仕妣延安車氏憲基女有古賢媛風以高宗壬午正月九日生公自幼端正質直才思穎慧甫上學能通孝經有至性承順父母兼養志軆得時味必歸獻之不先入口母役井臼輒請代勞溫清定省不失常規父疾母患祈天甞糞靡不用極褻衣之澣藥餌之供躬執不委人及遭故擗泣幾絶前後如之歛贇葬祭兢兢無遠禮居喪不脱絰帶雖寒暑不離喪次風雨不廢省墓事兄如嚴父與弟同枕案鄉里咸稱其孝友每當諱日散致之誠毫不違禮又想其在世時所嗜之物必求而備之接朋友處宗黨渾然一團和氣而至辨析義理如截鐵破竹人莫不畏服居常自靖絶芬萃於一切世味泊如也慨然以發揮先德訓迪來裔爲巳責吁其偉矣公孝友之篤定力之嚴宜其昌門户垂統緒爲後世繼也丁酉正月八日享年七十六卒葬于東岩案山嶝酉坐原配全州李氏熹珉女同原上下封有子二長東鎰次東龍孫某某長房出某某次房出餘不盡錄何日東鎰公事行徵余以狀余惟公嘉行懿績無德無名之如余者非所能當然東鎰夙交之友又實直人也難於固辭姑就本狀略叙如右俾世之以文事自任而有意世敎者有以裁擇焉 檀紀四三三十年 丁丑(1997년) 重陽節 木川 張利錫 撰 묵헌거사휘연성행장(黙軒居士諱淵醒行狀) 공의 휘는 연성(淵醒)이요. 자는 순명(順明)이요. 묵헌(黙軒)은 그 호라. 고려광녹대부검교대장군휘장(高麗光祿大夫檢校大將軍諱璋)이 시조가 되고 벼슬이 대를 이어 끊어지지 않다가 휘원길(諱元吉)에 이르러 대광보국광녹대부문하시중옥천부원군(大匡報國崇祿大夫門下侍中玉川府院君) 시호는 충헌공(忠獻公)이요. 이분이 휘 유(瑜)를 낳으시니 호는 건곡(虔谷)이라. 문과(文科) 중현대부판전농시 부정(副正) 벼슬을 하고 고려가 망하매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조용히 의(義)를 지키니 아조(我朝)에서 여러번 불러 벼슬이 자헌대부한성판윤(資憲大夫漢城判尹)에 이르러도 마침내 나아가지 않고 이분이 휘 숭문(崇文)을 낳으시니 호는 죽촌(竹村)이요, 무과병마절도사(武科兵馬節度使) 벼슬을 하시다가 세조병자에 육신(六臣)으로 더불어 참화(慘禍)를 같이 당하시니 자헌대부병조판서 벼슬을 주고 시호를 절민(節愍)으로 하사(下賜)하였다. 이분이 공의 十六대조시다. 부친의 휘는 춘현(春鉉)이니 묻혀(隱德)살고 벼슬을 안하셨다. 비는 연안차씨헌기(延安車氏憲基)의 딸이니 옛적 어진 부인의 유풍이 있었다. 고종 임오 정월 九일에 공을 낳으시니 어려서부터 단정하고 질직(質直)하고 재사(才思)가 영혜(穎慧)하여 글을 배울때부터 능히 효경을 통하고 지성이 있어 부모께 승순하고 지체(志軆)를 겸양(兼養)하며 시미(時味)를 얻으면 반드시 부모께 드리고 먼저 먹지 않고 모친이 정구(井臼)에서 일을 하시면 문득 대신하기를 청하고 따뜻하게 하고 서늘케 하는 것과 밤에는 잠자리를 정하고 새벽에는 기후를 살피며 떳떳한 규칙을 잊지않고 부모님께서 병환으로 누워계시면 하늘에 빌고 똥을 맛보며 극진한 정성을 다하며 설의(褻衣) 세탁과 약이(藥餌)의 장만함을 손수하고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초상을 당하여 가슴을 치고 기절하기를 전후 초상에 같이 하고 염빈장제를 조심조심해서 예의에 어긋남이 없이하고 거상에 질대(絰帶)를 벗지 않고 비록 춥고 더워도 상차(喪次)를 떠나지않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성묘를 폐하지 않고 형(兄) 섬김을 엄한 부친과 같이 하고 아우로 더불어 베개와 책상을 같이하니 고을 사람들이 그 효도와 우애를 모두 칭찬하더라. 매양 휘일을 당하면 산치(散致)의 정성을 추호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고 또 살아계실때 즐기던 것을 생각해서 반드시 구하여 준비해드리고 친구를 대할때나 종당(宗黨)을 대할때에 혼연하고 일단 화기있게하나 의리를 변석(辨析)하는데는 쇠를 끊고 대를 쪼개듯 분명히 하니 사람들이 다 외복(畏服)하더라. 보통때에는 자정(自靖)하고 분췌(芬萃)를 끊어버리며 일체 세상일에는 담박하시며 개연(慨然)으로써 선덕(先德)을 발휘하고 후손을 훈적(訓迪)하므로 본인의 책무로 삼으리 놀랍고도 위대하도다. 공의 효도와 우애의 독실함과 정력(定力)의 엄격함이 마땅히 그 문호를 창성케하고 통서(統緖)를 들여와 후세까지 계승되리로다. 정유 정월 八일에 향년 七十六으로 졸하시니 동암 안산등유좌원에 장사하고 배에 전주이씨 희민(熹珉)의 딸이니 동원(同原) 상하봉하다. 두아들이 있으니 장에 동일(東鎰)이요. 차에 동용(東龍)이요, 손(孫)에 모모는 방방이 낳고 모모는 차방이 낳고 여불진록(餘不盡錄)이라. 어느날에 동일이 공의 사행(事行)을 기록해서 나를 불러 장을 청하기에 내가 공의 행의적(行懿績)에 무명무덕한 사람이 능히 담당할 수 없으나 동일은 일찍 사귄 벗이요. 또 실직(實直)한 사람이라. 고사하기 어려워서 아직 본장(本狀)을 보고 대강 우편(右)과 같이 서하고 세상에 문사(文事)로써 자임(自任)하고 세교(世敎)에 뜻이있는 자로 하여금 써 재택(裁擇)함이 있게 하노라. 단기四三三十년 정축(1997년) 중양절 목천 장이석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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